사랑의 덧없음과 자아 탐색: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덧없는 사랑, 그 익숙한 고독 속에서 나를 찾다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 나눌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0대 초반, 막연한 동경과 함께 읽었던 이 소설은 당시 저에게 '사랑의 복잡성'이라는 모호한 감각만을 남겼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펼쳐든 이 책은 페이지마다 새로운 질문과 깊은 울림을 던져주었습니다. 단순히 연애 소설이라 치부했던 과거의 저를 반성하게 할 만큼,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문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리뷰는 단순히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을 넘어, 작가 사강의 삶과 철학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그리고 주인공 폴의 복합적인 심리가 현대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익숙한 고독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I.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사강의 삶이 투영된 사랑의 덧없음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의 이름 앞에는 늘 '천재 작가', '스캔들 메이커', 그리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대담한 선언이 따라붙습니다. 19세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사강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의 삶은, 작품 속 인물들처럼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파괴적이었습니다. 도박과 마약, 빠른 속도를 즐기는 자동차 경주까지, 그녀는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습니다.
이러한 사강의 삶의 태도는 그녀의 사랑관, 즉 "사랑은 2년 이상 가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시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폴과 로제의 5년 또는 6년 간의 권태로운 관계는 바로 이러한 사강의 사랑관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로제의 불성실함과 폴의 고독은, 사랑이 열정만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익숙함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공허함이 찾아올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사강의 삶과 폴의 심리를 오버랩하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강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랑의 덧없음을 예견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독을 담담하게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녀의 대담한 삶이 오히려 작품 속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묘사에 깊이를 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I. 세 인물의 춤, 그리고 폴의 복합적인 선택
소설은 39세의 실내 디자이너 폴, 그녀의 오랜 연인 로제, 그리고 폴에게 열정적으로 구애하는 25세의 젊은 변호사 시몽, 이 세 인물의 미묘한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폴(폴라): 익숙함과 새로운 열정 사이의 방황
폴은 로제와의 관계에서 완벽한 안정감과 익숙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권태와 고독에 지쳐 있습니다. 로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폴에게 구속되기를 원치 않으며, 다른 여성과의 만남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로제의 태도는 폴에게 깊은 외로움을 안겨주죠.
"로제에게 정착하고 싶어" 하지만, 로제의 불성실함에 지쳐갑니다.
이때 시몽이 등장합니다. 14살 연하의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구애는 폴에게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됩니다. 시몽과의 관계는 폴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잃었던 자존감을 되찾아주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폴은 결국 시몽을 떠나 익숙한 로제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왜 폴은 격정적인 사랑을 뒤로하고 다시 권태로운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소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암시합니다 :
- 오랜 관계에 대한 집착: 6년간 로제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았던 고통스러운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 자기 성찰과 새로운 관계에 대한 불안감: 시몽의 열정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즉 자신이 젊고 생기 있는 다른 존재를 연기하는 듯한 어색함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 나이에 대한 부담과 사회적 시선: 39세의 폴은 25세의 시몽과의 나이 차이에 대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라는 그녀의 대사는 이러한 망설임을 보여줍니다.
- 격정적 사랑에 대한 회의: 폴은 시몽의 격정과 열정이 신선한 자극이었지만, 매번 그런 자극을 느낄 수는 없었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격정적인 자극보다는 일상적인 안정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로제: 자유를 갈망하는 고독한 영혼
로제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폴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도를 일삼습니다. 그는 폴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놓치기 싫어하며 깊이 생각하기보다 당장의 복잡한 심정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제가 다시 '일 때문에 늦을 것 같다'고 전화하는 모습은 이 관계가 끝없이 반복되는 덧없음을 암시합니다.
시몽: 자기 욕망의 자각에서 비롯된 열정
젊고 순수한 시몽의 사랑은 폴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하지만 시몽의 폴에 대한 애정은 폴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자 자기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그에 충실하려는 각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폴과의 관계가 그가 "원치 않은 것을 또 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자,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드려고 하죠"라는 생각에 이별을 택합니다. 그의 눈물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고통과 슬픔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폴의 선택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폴은 격정적인 사랑이 가져올 또 다른 형태의 불안정함과 자기 상실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요? 익숙한 고독이 주는 안정감, 비록 그것이 불완전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열정보다 더 안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II.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의 의미
이 소설의 제목은 시몽이 폴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사강은 이 제목에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독특한 문학적 장치는 작품에 어떤 심층적인 의미를 더하는 것일까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의 질문은 단순히 음악 취향을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0세를 앞둔 폴에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가 여전히 남아있긴 할까"라는 심오한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폴은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이 늘 로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익숙함(로제)을 넘어 새로운 경험(시몽과 브람스)에 대한 설렘과 불안, 고민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이 말줄임표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음을,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그로 인한 내면의 파문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이 제목을 곱씹으며 제 삶 속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같은 질문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익숙함에 안주하며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을까요?
IV. 사랑의 덧없음, 그리고 반복되는 고독의 현실
소설의 결말은 폴이 시몽을 떠나 로제에게 돌아가는 다소 현실적인 선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는 격정적인 자극보다 일상적인 안정을 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폴은 시몽의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을 부러워하면서도, 매번 그런 격정을 느낄 수는 없었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이제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는 묘사처럼, 안정과 익숙함을 택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로제에게 돌아간 폴이 다시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라는 익숙한 말을 듣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장면은 로제가 변하지 않는 사람이며, 폴은 계속 외로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며, 사랑이 반드시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현실적이고 덧없는 속성을 보여줍니다.
"끈질긴 사랑은 왜 끈질긴가. 사강은 그 집요한 사랑의 굴레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이 결말은 저에게 씁쓸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익숙한 고통을 새로운 행복보다 더 안전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폴의 선택은 비록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랑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사랑의 덧없음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과 마주하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겠죠.
V. 시대를 초월한 섬세한 심리 묘사와 문학적 특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단순한 연애 소설을 넘어,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들로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닙니다 :
- 섬세한 심리 묘사: 폴, 로제, 시몽 세 인물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선을 깊이 있게 묘사하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사랑의 덧없음과 고독: 사랑의 영원성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의 덧없음을 강조하며, 사랑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는 고독감을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 자아 탐색과 정체성: 폴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으려 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현실적인 결말: 전형적인 로맨스와 달리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적인 결말을 통해 사랑의 복잡성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를 보여줍니다.
- 문학적 장치: 제목의 말줄임표(...) 사용과 같은 독특한 문학적 장치는 작품의 심층적인 의미를 더하며, 사강의 재능을 부각합니다.
VI. 결론: 당신의 '브람스'는 무엇인가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의 덧없음과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섬세한 심리 묘사와 독특한 문학적 장치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여인의 연애사를 넘어, 인간 내면의 복합성과 자아 탐색의 여정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저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듯 고독의 형태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 폴처럼, 여러분의 삶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세요. 어쩌면 그 질문이 잊고 살았던 당신의 진정한 욕망과 마주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