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역작, <예언자>(A Prophet)는 단순한 갱스터 영화를 넘어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과 성장을 깊이 있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프랑스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 영화인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임을 입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언자>의 흡입력 있는 줄거리와 연출을 시작으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인 '장 이론'과 '자본' 개념을 통해 영화 속 권력 역학을 분석하고, 나아가 서양 영화에 내재된 이슬람 편견에 대한 비판적 시각까지 다각도로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1. 폭력의 장에서 피어난 '예언자'의 탄생
<예언자>는 19세 아랍계 청년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르 라힘 분)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시작됩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의 약자였던 말리크는 교도소라는 극한의 '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합니다. 그곳은 코르시카계 마피아 보스 루치아노(닐스 아레스트루프 분)가 압도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자, 아랍계 이민자 집단이 또 다른 세력을 형성하며 대립하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루치아노의 눈에 띄어 그의 심부름을 시작하게 된 말리크는 짐승처럼 살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점차 교활하고 영리한 존재로 변화합니다. 루치아노는 자신에게 필요한 말리크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말리크는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외부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잔혹하지만 현실적인 폭력과 배신의 연쇄를 통해 인간 본연의 생존 욕구와 권력에 대한 갈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연출로 스크린 인터내셔널로부터 "예리하고 고통스런 세부묘사의 사회적 리얼리즘과 강렬한 장르 오락으로서 훌륭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2. 부르디외의 '장 이론'으로 해부한 감옥의 권력 역학
영화 <예언자>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 이론'과 '자본' 개념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입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는 다양한 자율적인 '장(Field)'들로 구성되며, 각 장은 고유한 가치와 권력 관계, 경쟁 규칙을 지닙니다. 교도소 역시 수감자, 교도관, 외부 조직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권력과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하나의 역동적인 '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리크는 교도소라는 '장'에서 생존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아비투스(Habitus : 아비투스는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계급 구성원들의 문화적 상징이나 행동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아비투스는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와 개인이 속한 사회구조에 의해 산출되고 내면화된다.)'를 형성하고 체화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그가 코르시카 그룹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살아남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새로운 '문화자본'의 획득입니다. 루치아노와의 관계, 그리고 교도소 내 아랍계 그룹과 집시 그룹과의 연합을 통해 그는 '사회자본'이라는 관계망을 구축합니다. 나아가 불법 약물 거래를 통해 '경제자본'을 축적하고, 점차 교도소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상징자본'(명성, 인정)을 늘려갑니다.
"이 감옥은 너에게 학교가 될 거야." (루치아노의 대사)
말리크는 루치아노가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것처럼, 역으로 그를 이용하며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갑니다. 이는 각 '장'의 참여자들이 그 장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 즉 '일루지오(Illusio : 일루지오는 일반적인 의미의 '환상(illusion)'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일루지오는 단순히 개인이 가진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특정 '장(field)' 안에서 공유되고 있는 집단적 신념 체계를 의미합니다.)'를 공유하며 게임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와 명예를 확립하려는 '상징 투쟁'을 벌인다는 부르디외의 이론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말리크의 성장은 결국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획득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교도소라는 장의 권력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3. 서양 영화, 이슬람 편견의 벽을 넘어서는가?
<예언자>의 아랍계 주인공 말리크는 서양 영화가 이슬람과 무슬림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적으로 서양 영화는 이슬람에 대해 게으른 아랍인, 황량한 사막, 부패한 왕실, 교활한 상인,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종교 등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확산하는 데 일조해왔습니다.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로 축소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거나, 반이민 정서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아랍계 주인공 말리크를 단순한 악당이나 피해자가 아닌, 생존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지만 동시에 지식을 얻고 세력을 확장하며 성장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립니다. 이는 기존의 단편적인 이슬람 묘사를 넘어서려는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물론, 교도소라는 배경과 범죄 연루라는 설정이 여전히 일부 고정관념과 연결될 여지를 남긴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슬람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이해와 공감, 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며, 무슬림 영화 감독과 배우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그리고 꾸란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토대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도가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예언자>는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결론: 절망 속에서 피어난 인간 존재의 빛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는 칸 영화제에서의 성공을 넘어 프랑스 사회의 소수자 문제, 교도소라는 특수한 '장'에서의 생존과 권력 역학, 그리고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 이론을 통해 다각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명작입니다. 말리크라는 한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기회를 포착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죄수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존재 의미와 성장 가능성을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아직 <예언자>를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강렬한 서사와 깊이 있는 메시지를 직접 만나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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