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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책이랑 영화랑 2025. 6. 9. 10:10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꺼내 보인 책은 바로 유발 하라리의 걸작, <사피엔스>입니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읽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 듯 합니다. 책장에 꽂힌 이 책을 다시 읽고 이제서야 비로소 이 방대한 인류 서사에 대한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과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되어 인류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들을 함께 통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그리고 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사피엔스>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상상의 질서'와 '이야기하는 동물'로서의 사피엔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된 핵심적인 이유가 뛰어난 지능이나 도구 제작 능력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가진 독특한 능력,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믿는 능력"에 기반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저는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국가, 종교, 기업, 심지어 돈과 같은 것도 모두 우리가 집단적으로 믿는 '상상의 질서'라는 것이죠.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고 믿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견해를 가진 저로서는 이 '상상의 질서'라는 개념이 너무나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결국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소수의 개체만이 협력할 수 있는 다른 동물 종과 구별되는 사피엔스만의 결정적인 특징이라는 하라리의 통찰은, 역사를 바라보는 저의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행위 자체가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생존 전략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됩니다.

2. 인류 문명의 네 가지 혁명, 그 빛과 그림자

하라리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방향성을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혁명(인지 혁명, 농업 혁명, 과학 혁명)과 인류의 통합 과정을 제시합니다. 이 혁명들이 인류의 힘과 지배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고 설명하죠.
 

2.1. 인지 혁명: 허구의 씨앗을 뿌리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인지 혁명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의 출현을 가져왔습니다. 이 덕분에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죠. 뒷담화와 허구를 통해 최대 150명까지의 사회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다른 인류종과 구별되는 사피엔스만의 특징으로 작용했습니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하라리는 강조합니다. 이 부분은 문학적 상상력과 서사의 힘이 단순한 유희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2.2. 농업 혁명: '거대한 사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하라리가 제시하는 농업 혁명에 대한 시각은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농경 생활로의 전환을 하라리는 "거대한 사기" 또는 "함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개별 사피엔스의 삶의 질은 오히려 저하되었지만, 종 전체의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아이러니는,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개인의 고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진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번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 이삭 줍는 사람들

 

2.3. 인류의 통합: 화폐, 제국, 종교라는 상상의 그물망

 
화폐, 제국, 종교와 같은 '상상의 질서'를 통해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지고 인류 사회가 통합되었다는 점은, 우리가 얼마나 견고한 허구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게 했습니다. "돈은 신과 왕이 실패한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하라리의 문장은 화폐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국이 보편적 사상을 퍼뜨려 인류 문화를 통합한 역할, 그리고 종교가 수많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해왔다는 분석은, 사회 시스템의 복잡한 면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종교를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의 시각은 다소 일방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4. 과학 혁명: 무지의 인정에서 시작된 폭발적 지식

 
약 500년 전부터 시작된 과학 혁명은 무지의 인정과 탐구를 통한 지식의 폭발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과학 혁명은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는 하라리의 말은, 겸손이 얼마나 큰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엔진 역할을 하고 제국주의의 확장에 기여했다는 분석 또한 인류 역사의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 부분은 특히 오늘날의 기술 중심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3. 미래 인류의 갈림길: 호모 데우스와 AI의 그림자

<사피엔스>의 후반부는 저를 더욱 깊은 사색에 빠지게 했습니다. 하라리는 현재 인류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으며, 특히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큰 관심과 경계를 동시에 표명합니다. "사피엔스가 아니라 이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라틴어로 '신'을 의미하는 '데우스'는 인류가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는 하라리의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다르다.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 모른다."

 
AI는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날 수 있으며, 인간 고유의 능력인 '이야기 엮는 능력'까지 갖게 될 경우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는,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하고, 인간의 경제적 가치와 존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설득력 있게 제시됩니다. 하라리는 AI가 만들어낼 강력한 이야기를 '데이터교'라고 부르며, 모든 것을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인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4. 논쟁의 불씨: 비판적 시선으로 '사피엔스' 읽기

<사피엔스>는 분명 위대한 저작이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텍스트의 논리적 모순과 저자의 편향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라리는 내부 모순이 있다는 비판을 여러 학자들로부터 받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실재성을 강조하면서도, 명상을 통한 대안 제시에서는 고통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점은 저에게 큰 의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고통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핵전쟁, 기후변화, AI로 인한 고통을 왜 그렇게 경고하는 것일까요?
또한 종교에 대한 시각 역시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종교를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이자 이데올로기적 역할만 하는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시각은, 종교가 인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과 개인의 삶에 주는 심오한 의미를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비판은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는 광대한 시야와 통섭적인 접근, 그리고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인류 역사를 대중에게 흥미롭고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 중요한 저작임은 분명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고정관념이 깨지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5. <사피엔스>를 읽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은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집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인공지능을 비롯한 혁신적인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힘을 아직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보다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는 전지구적 협업과 인간 의식의 계발(명상)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하라리가 말하는 이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아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나'라는 존재가 이 거대한 인류 서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역사나 인류학에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하라리 특유의 명쾌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며 읽어나가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인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독서 리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