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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경계를 허무는 가장 아름다운 판타지

책이랑 영화랑 2025. 6. 24. 10:40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물은 어떤 모양도 지니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어떤 장벽도 허물어뜨리는 힘을 가졌습니다. 사랑 또한 이와 같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모양을 찾아 떠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걸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영화 개요: 세상의 모든 편견을 뛰어넘는 걸작의 탄생

2017년 개봉 (한국 2018년 2월 정식 개봉) 이후 전 세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집약한 작품입니다. 제74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전 세계 영화 감독 가운데 가장 예술적으로 인정받은 덕후 감독"이라 불리며, "동화적 판타지 영화가 그를 대표하는 종합 상품"으로 꼽힙니다. 어릴 적부터 괴물과 전래동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잔혹 동화 풍의 삼각 죽음을 주제로 한 기괴한 괴물들이 나오는" 영화를 제작하며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왔죠. 그의 작품은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리얼한 잔혹함"이 공존하며, 특히 <판의 미로>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그를 "다크 판타지의 천재"로 평가받게 했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공식 예고편

2. 줄거리와 캐릭터: 세상의 '비정상'들이 모여 '정상'에 맞서다

영화는 196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 미국 볼티모어의 비밀 항공우주 연구센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에서 언어 장애를 가진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정부의 비밀 연구소에 갇힌 양서류 '괴생명체'와 교감하며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괴생명체가 해부될 위기에 처하자, 엘라이자는 친구들과 함께 그를 구하기 위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죠.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타자성'을 형상화합니다.

타자와의 교감

  •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 선천적인 언어 장애로 수화로 소통하는 인물로, 연구소의 청소부로 일하며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에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지만, 그와의 만남 이후 삶에 "생기"가 부여됩니다. 그녀는 괴생명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에 깊은 공감과 사랑을 느낍니다.
  • 괴생명체: 아마존 부족들이 신처럼 숭배하던 성스러운 존재였지만, 미국 정부에 의해 실험체로 끌려와 갇히고 학대받습니다. 인간과 어류의 혼종적 형태를 띠며, 상처를 치유하고 재생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죠. 스트릭랜드의 시선에 따라 '신'이었다가 '괴물'로 불리는 '경계적 존재'입니다.
  • 스트릭랜드 (마이클 섀넌): 연구소의 보안 책임자로, 백인, 남성, 권력자로서 1960년대 미국 주류 사회의 편견과 폭력성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괴생명체를 "자산(asset)"으로 여기며 학대하고,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을 멸시하는, 영화 속 진정한 '괴물'로 그려집니다.
  • 젤다 (옥타비아 스펜서): 엘라이자의 절친한 직장 동료이자 흑인 여성 노동자로,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엘라이자의 조력자가 됩니다.
  • 자일스 (리차드 젠킨스): 엘라이자의 옆집에 사는 가난한 화가이자 동성애자로, 그 역시 사회적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인물입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부 내레이션을 통해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들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3. 주요 테마 및 메시지: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사랑의 힘, 그리고 소수자의 연대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3.1.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사랑의 힘

영화는 "차별과 혐오를 이기는 강렬한 사랑의 힘"을 주제로 삼습니다. 말을 못 하는 엘라이자, 흑인 여성 젤다, 동성애자 자일스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괴물'로 낙인찍힌 양서류 인간과 연대하여 주류 사회의 폭력과 편견에 맞섭니다.

주류 사회의 폭력과 편견

  • '타자성'의 인정: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을 인용하며, 영화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스트릭랜드는 타자를 배제하려 하지만,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어떠한 편견으로 규정하지 않고 생명을 가지고 있는 그것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배타성을 넘어 다양성을 인정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 '괴물'의 재정의: 외형적으로 기괴한 양서류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존재"인 스트릭랜드가 진정한 '괴물'로 상징됩니다. 이는 "진정한 괴물은 백인 특권층의 계층화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냅니다.

3.2. 소수자의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

영화는 "약한 것이 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점과 불행은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엘라이자, 젤다, 자일스 등 사회적 약자들이 "타인성의 공유"를 통해 힘을 합쳐 강자의 횡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타인성의 공유

  • 경계적 존재: 엘라이자와 괴생명체는 모두 '경계적 존재'로 그려집니다. 엘라이자는 "인간도 크리처도 아닌 그 사이의 경계에 있는" 존재이며, 괴생명체는 '신'과 '괴물'의 경계에 있습니다. 영화는 "결국 경계를 짓는 것은 ‘인간’이며 불분명한 기준 아래 판단되는 것이므로 실상 경계란 벗어나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 '물'의 상징: "물은 내재하는 신성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존재 간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며 개별적 자아를 희생하여 사랑의 합일로 새롭게 생명을 얻는 의식 변용의 장"으로 그려집니다. 물방울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육체적 결합 이후에 이어지는 시퀀스로 그들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자, "물의 모양, 즉 ‘셰이프 오브 워터’ 자체이자 사랑의 모양"을 의미합니다. 또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4. 예술적 연출 및 상징: 시각과 청각을 통한 메시지 전달

4.1. 색채의 상징: 생기와 변화의 붉은 물결

영화는 "초록, 빨강, 노랑" 등의 색채를 주요 심상으로 활용합니다. 특히 "청록색을 띤 물과 생명체 그리고 그것과 결합하는 붉은 엘라이자의 마지막 모습은 과거와 미래, 혹은 우리 편과 적의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입장의 결합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를 만난 후 "붉은 머리띠나 붉은 구두"를 착용하는 변화는 삶의 '생기'와 사랑을 상징합니다.

4.2. '물'의 의미: 사랑의 무정형성과 경계를 허무는 힘

물속에서 교감하는 엘라이자와 괴생명체

 

<셰이프 오브 워터>의 '물'은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이자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요소입니다.

  • 사랑의 본질: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양을 취하듯, 사랑 또한 그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물의 모양이 사랑의 모양입니다. 물과 사랑은 모양이 없잖아요. 필요한 대로 자유자재로 모양을 취합니다. 물과 사랑은 장벽을 허무는 힘을 지녔고요. 또 유연합니다"라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 경계 허물기: 물은 모든 생명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은 사회가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물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 생명과 부활의 원천: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존재를 되살리는 힘을 가집니다. 괴생명체의 치유 능력은 물의 힘과 연결되어 자일스의 탈모를 해결하거나, 엘라이자의 치명적인 상처를 아가미로 변형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이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 변화와 성장: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 욕조에만 물을 채워 자위하던 모습에서, 사랑에 빠진 후 욕실 전체를 물로 가득 채우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엘라이자의 목 흉터가 아가미로 변하며 물속에서 부활하는 것은, 그녀가 불완전한 인간에서 벗어나 괴생명체와 함께하는 완전한 존재로 탈바꿈했음을 상징합니다.
  • 사회적 영향력: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으로 방 한가득 채워진 물이 아래층 극장에 누수 현상을 일으키는 장면은, 그들의 '낯설고 피하고 싶은 변화'가 사회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소수자들의 연대와 행동이 주류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암시하며, 더 나아가 큰 물속으로 나아가는 엔딩은 '선한 영향력의 물줄기가 합쳐져서 더 큰 세상의 밖으로 나아가는 공존'을 의미합니다.

4.3.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서의 판타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미녀와 야수>

 

영화는 <미녀와 야수>와 같은 고전 동화의 모티브를 가져오면서도, "야수(괴생명체)는 저주를 받아 흉물이 되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의 괴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 였단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타자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에로틱한 요소가 명백하게 들어 있는 성인들의 동화"로, 사랑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점도 특징입니다.

4.4. 몽환적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눈이 호강을 누리는 것 같은 작품이고 그야말로 원했던 이미지와 사운드의 성찬"이라는 평가처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화려한 비주얼"이 돋보입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은 "가장 낭만적인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라는 평을 받으며 영화의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목소리를 잃은 공주"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표정 동작 분위기 이런 것들로 정서를 전달할" 정도로 탁월하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괴생명체를 연기한 더그 존스는 "슈트 연기의 1인자"로 불리며, "CG를 뛰어넘는 어떤 질적 존재감을 보여주는"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했습니다.

5. 아쉬운 점: 선악 구도와 급전개

명확한 선과 악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영화의 "선악 구도가 좀 촌스러웠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악당은 마냥 악하고 선한 역은 마냥 선했다"는 점이 인물의 입체성을 해친다는 의견이 있었죠. 또한 전개가 "조금 급전개라서 아쉬웠다. 서사의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6. 결론: '사랑'과 '타자성', 그리고 경계를 허무는 공존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와 예술적 연출이 집약된 작품으로, 괴물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냉전 시대 미국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리고 소수자들의 연대와 공존의 가능성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신은 세상에 여러 타인의 얼굴로 등장할 수 있다"는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처럼, 영화는 '괴물'로 상징되는 타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깊은 윤리적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 영화는 사회적 '정상'의 테두리를 거부하고 '비정상'이 없는 낙원으로 탈출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장애인과 비장애인, 주류와 비주류 등 모든 경계를 허물고 존중과 공존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사랑은 규정지을 수 없고 무한하며, 삶의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여정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셰이프 오브 워터>. 잔잔한 물결처럼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이 영화를,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