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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 숨겨진 위대함: 존 윌리엄스 『스토너』, 삶의 의미를 묻다

책이랑 영화랑 2025. 5. 31. 10:28

 

 

오랜만에 제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기게 했던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바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입니다. 1965년에 출간되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수십 년이 흐른 뒤 입소문을 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된, 그야말로 '역주행의 신화'를 쓴 작품이죠.

저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과연 평범한 한 남자의 일대기가 나에게 무슨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순간, 그 평범함 속에 담긴 비범한 진실이 제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렸습니다. 『스토너』는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반전 없이, 윌리엄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담담함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이 리뷰에서는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문학의 의미, 고독과 인내, 그리고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윌리엄 스토너, 그는 누구인가? 평범함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서사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 주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농과 대학에 입학하지만, 그의 삶은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접한 순간 완전히 뒤바뀌죠. 그 순간, 스토너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감동과 열정을 느끼고, 슬론 교수는 그에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해줍니다. 이 강렬한 깨달음은 스토너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고, 그는 평생을 대학에서 학자이자 교수로 살아가게 됩니다.

스토너의 삶은 어찌 보면 우리 주변의 흔한 인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결혼과 육아, 직장 내 갈등, 짧은 사랑 등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크고 작은 일들이 시간 순으로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평범함'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여러 출처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치 군더더기 없는 직구처럼, 화려한 문체나 반전 없이 핵심만 남겨둔 간결함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깊은 몰입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저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스토너의 삶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서사가 저에게는 오히려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직구 같다. 문체도 특별하거나 유려하지 않고 줄거리는 우리가 보통 소설에서 기대하는 반전이나, 서스펜스 같은 것도 없이 아주 단순하다."

2. 문학, 삶의 구원이자 정체성의 기반

스토너의 삶에 있어 문학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내면의 안식처였습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과 학계 내의 지루하고 피곤한 갈등 속에서, 문학은 스토너에게 위안과 삶의 목적을 주었습니다. "검고 차가운 인쇄물 속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문자들의 조합"인 문학은 그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불안정한 가정이나 결혼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을 문학 속에서 찾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저 역시 고단한 일상 속에서 책이 주는 위로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또한 스토너의 중요한 관계들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이끈 슬론 교수, 문학에 대한 공동 연구를 통해 사랑을 키웠던 캐서린 드리스콜, 그리고 딸 그레이스와 함께 서재에서 책을 읽고 공부했던 소중한 시간들 까지, 문학은 스토너의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서 문학을 빼놓고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은 그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3. 고독과 성실함, 그리고 복잡한 인간 관계 속에서

스토너의 삶은 여러 인간 관계로 얽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그는 깊은 고독을 경험합니다.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은 사랑 없는 시작이었고, 곧 실패작임이 드러납니다. 그들의 집은 "전쟁터"처럼 묘사될 정도로 냉담하고 단절된 관계였습니다. 딸 그레이스를 깊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디스의 통제와 그레이스 자신의 문제로 인해 부녀 관계는 단절됩니다. 스토너는 자신이 알았던 사랑스러운 아이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느낄 만큼 큰 상실감을 겪습니다.

학계 동료들, 특히 학과장 로맥스와의 갈등은 그의 교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히고 고립시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 캐서린과의 관계마저 외부의 압력으로 끝나면서, 그는 다시 홀로 남게 됩니다. 이 모든 관계적 단절과 상실은 스토너의 삶 전반에 흐르는 고독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병들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이 혼자임을 느낍니다. 스토너의 이야기는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본질적인 고독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고통을 수렴하는 몸처럼, 스토너는 견디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과 불행 속에서도 스토너의 삶을 지탱하고 그의 존엄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의 성실함진심입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불합리한 상황에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에게는 그의 묵묵함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이 그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자 위엄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실패인가, 위대한 삶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다

 

겉보기에 스토너의 삶은 여러 실패로 점철된 것처럼 보입니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지 못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으며, 사랑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이러한 세속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결코 의미 없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작가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진짜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주어진 삶의 고통과 역경을 묵묵히 견디고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평범함의 지극함을 실천해 거의 ‘성자’처럼 보이는 생"이라고 묘사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 사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스토너는 우리에게 '조용한 위대함'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소설의 마지막,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묻는 장면은 독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저는 이 질문 앞에서 한동안 멈칫했습니다. 저 역시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 기대가 세속적인 성공에만 맞춰져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토너의 삶은 세속적인 성공 기준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낸 '위엄 있는 삶'으로 그려집니다. 그의 삶은 요란한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얼마나 숭고한가를 보여줍니다.

나가며: 우리 모두는 스토너였다

 

『스토너』가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이유는 스토너의 삶이 담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과 감정들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의 괴리, 고독, 사랑, 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우리도 스토너와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였고, 스토너가 될 수 있다" 는 문구처럼, 이 책은 빠르게 변화하고 요란한 현대 사회 속에서 '조용한 위대함'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사랑하고, 고난을 견디며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지니는 깊이와 존엄성을 이 소설은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스토너』는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중요한 고전으로 남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잔잔한 위로를 찾고 있다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꼭 한번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분명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깊은 여운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합니다:

  • 삶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분
  • 화려한 성공보다는 내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
  • 고독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분
  • 담백하고 절제된 문체를 통해 깊은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